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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판다 강민호 셰프
   비앤씨월드 2016.11.29 Pm01:59, 조회 : 1,852  
도전을 멈추지 않는 남자

지난 9월 강민호 셰프는 인천에서 4년간 운영해온 ‘빵 굽는 쉐프의 꿈’을 정리하고 부천으로 터를 옮겼다. 그가 세 번째로 오픈한 빵집의 이름은 ‘빵판다(BREAD PANDA)’. 주황색 차양과 민트색 외관이 아기자기한 빵판다에는 아이 손을 잡은 엄마와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들이 쉴 새 없이 오고갔다. 판다가 귀엽게 그려진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들은 판다의 선한 얼굴을 쏙 빼닮은 셰프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앞으로 강민호 셰프의 10년이 펼쳐질 무대, 빵판다에는 희망이 넘쳐흐르고 있다.

취재·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레슬링 선수, 제빵사를 꿈꾸게 된 사연
“매일매일 오븐에서 따뜻하게 구워져 나오는 빵이 좋다”는 유쾌한 제빵사. 강민호 셰프의 인생사전에 본래 빵이란 단어는 없었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중학생 때부터 레슬링 선수였던 그는 운동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가 레슬링 선수가 아닌 ‘제빵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건 스무살 무렵이었다. 당시 체육학과로 유명했던 용인대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을 했으니 원래대로라면 창창한 앞길이 펼쳐져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무릎에 이상이 오면서 그의 레슬링 인생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운동을 그만두고 뭘 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때 고려당에서 일하던 제 누나의 친구 분이 빵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살길을 찾아야 했던 청년은 대학을 자퇴하고 망설임 없이 제과제빵업계의 문을 두드렸다. 오전에는 주재근 베이커리에서 근무를 하고 오후가 되면 김상엽제과제빵학원에서 빵을 배웠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학원을 다니느라 하루 종일 벅찬 스케줄이 이어졌지만 이상하리만치 힘들지가 않았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운동선수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웃음) 다른 동기들은 아침마다 힘들어하는데 저는 눈이 말똥말똥한 거예요. 밤을 새고 새벽 같이 일어나 빵을 만들어도 지치지 않았어요. 지금도 5시 반에 일어나서 이른 아침부터 직원들이랑 같이 빵을 만들어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운동선수 특유의 강한 집념은 빵을 하나 완성할 때에도 불쑥불쑥 나타나 그를 채찍질했다. 다행스럽게도 제과제빵은 그의 적성에 딱 맞았다.

실패 그리고 도전
군대 생활 3년을 제외하고 그는 주재근 베이커리에서 4년, 신당동에 있던 프랑세즈 과자점에서 4년을 일하며 기술을 익혀갔다. 프랑세즈 과자점을 나올 때 그는 한 매장을 책임지는 공장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언제나 그렇듯 예고 없이 찾아왔다. 발단은 2005년 서른 살의 나이에 오픈한 첫 가게. “서른 살 때 가게를 오픈하는 게 제 목표였어요. 제빵사는 가게만 내면 무조건 돈 벌고 성공할 줄 알았거든요. 섣부른 판단이었죠. 그것만 보고 성실하게 빵을 만들었는데, 전 그냥 ‘성실하기만’ 했던 거예요” 그의 첫 가게인 ‘프랑세즈 과자점’은 서울시 중랑구 망우리에 위치했다. 그때만 해도 사실 망우리는 옛 동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분위기가 스산해 빵집 입지로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15평 공간에 빵부터 케이크까지 다양한 품목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의 빵은 그저 쇼케이스 위의 장식물에 머물러있었다.
10여 년간 갈고 닦아온 날개가 꺾이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오픈한 지 3년이 지난 2008년, 끝내 그는 가게를 접어야 했다. 호기롭게 시작해 치기로 끝나버린 실패는 젊은 제빵사에게 무엇보다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혹독한 실패의 맛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깨닫게 됐다고 고백한다. “만약 프랑세즈 과자점이 잘 됐다면 전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냥 돈 버는 데 취해서 살았겠죠. 그때의 실패는 제게 독이 아니라 약이었어요. 그러니까 제 인생은 2008년 전과 후로 나뉘어요”
새롭게 마음을 다잡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능장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달라진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학원도 마다하고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물론 학원을 다니면 쉽고 빨리 기능장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독학으로 공부하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제게 기능장 시험은 실패 후 첫 도전이었어요” 평균적으로 기능장 시험의 합격률은 15% 미만. 그는 4전5기의 도전 끝에 기능장 시험에 합격했다.
두 번째 가게를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해나갔다. 경험을 쌓기 위해 그는 오너가 아닌 직원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건대에 위치한 주재근 베이커리를 거쳐 스위트 블루바드까지. 다양한 형태의 제과점을 돌아다니며 저마다의 운영방식을 세심하게 살펴봤다. 특히 2009년에 총괄부장으로 입사한 스위트 블루바드는 당시 국내에 붐이 일기 시작한 마카롱 전문점이었다. “전문점 형태의 매장들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했어요. 스위트 블루바드에서 2년간 일하면서 두 번째 매장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작은 공간에서 한정된 품목만을 선보이는 빵 전문점. 그가 인천에 오픈한 두 번째 가게 ‘빵 굽는 쉐프의 꿈’은 그렇게 탄생됐다.
빵 굽는 쉐프의 꿈은 3평에 불과한 테이크아웃 빵집이었다. 첫 실패의 후유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였지만 빵 굽는 쉐프의 꿈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가 있었음에도 손님들은 3평짜리 빵집을 찾았다. 하루 1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던 작은 빵집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모양은 프랜차이즈 빵집과 같을지 몰라도 빵에 들어가는 재료나 반죽법을 다양하게 바꿔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예를 들어 르방, 중종 등 다양한 종을 사용해 빵의 식감을 다르게 하거나 프랑스 밀가루에 쌀가루를 접목시켜 보는 거죠. 전 빵의 식감이나 재료를 중시하는 편이에요. 이게 저희 가게가 다른 제과점들과의 차별화된 점이 아닐까 싶어요”

성장의 밑거름, 제과제빵 경연대회
강민호 셰프의 이력을 보면 각종 대회 수상실적들이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치즈 베이커리 경연대회 구움과자 부문 최우수상, 세계조리사대회 제빵 부문 최우수상, 캘리포니아 레이즌 베이커리 콘테스트 식빵 부문 대상, Siba 2015 일반빵 부문 최우수상 등등. 작은 대회까지 하나둘 모으면 A4용지 1/2페이지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기능장을 취득하고 지금까지 그는 다양한 제과제빵 경연대회에 출전해 상을 휩쓸었다. 그가 한 계단 한 계단 멈춰서지 않고 꾸준히 올라올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경연대회’에 있다.
“경연대회를 통해 배우는 게 엄청나요. 보통 다음 해 대회에 나간다고 하면 그 전년도부터 차근차근 대회 준비를 하거든요. 여러 가지 재료를 테스트해 보고 매장에서 직접 소비자 반응도 살피죠. 그 과정에서 실력이 많이 늘어요” 물론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레이즌 베이커리 콘테스트의 경우 첫 출전에는 ‘노력상’에 불과했지만 다음 출전에는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런가 하면 Siba 2015에서는 6년 만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대회에 여러 번 출전한 친구들을 찾아가 후기를 들으며 요령을 파악하고 혹여 제품이 생각한대로 나오지 않을 때면 그는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자문을 구했다. 알고 보니 ‘누구든 배울 게 있으면 쫓아다니자’는 게 그의 좌우명이란다. 한 번 넘어지면 그 자리를 딛고 더 힘껏 일어서는 집념의 제빵사. 그의 다음 목표는 제빵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을 위하여
빵 굽는 쉐프의 꿈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셰프는 얼마 전 부천에 자신을 꼭 닮은 ‘빵판다’라는 이름의 세 번째 가게를 오픈했다. 3평에 불과했던 규모를 40평으로 늘리고 빵 전문점에서 토탈 베이커리로 형태를 바꾸었다. 이제 그는 그간의 노하우가 응집된 빵판다에서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한다. “저는 빵판다가 누구에게나 즐겁고 맛있는 빵집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일단 제품이 안정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빵판다가 부천을 주름잡게 만들어야죠(웃음)”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해 가자 그의 입에선 새로운 목표와 미처 이루지 못한 꿈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사정상 자퇴하게 된 대학교 졸업장을 다시 따고 언젠가는 모든 제과인들의 꿈인 명장 시험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한 2008년 이후 10년 동안, 그의 목표는 ‘빵을 제대로 만드는 제빵사’가 되는 것이었다. 제빵사라는 직업이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기까지,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런 그에게 ‘제과제빵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묻자 짐작대로 ‘꿈이자 미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앞으로 저의 10년 후가 기대돼요” 스스로의 10년 후를 누구보다 힘껏 응원할 수 있는 용기는 아마도 숱한 실패와 좌절과 싸워온 그간의 시간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지금까지 이룬 목표보다 앞으로 꿈꾸는 목표가 더 많은 그의 10년에 화사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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