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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철 셰프
   비앤씨월드 2017.02.24 Pm02:13, 조회 :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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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Min Chul

콜마르 브레드
김민철 셰프

‘최고의 빵’을 만드는 남자
김민철 셰프는 한 번도 노선을 변경한 적이 없다. 고사리 손으로 빵을 집어 들던 11살 때부터 그의 꿈은 제빵사였다. 어떤 빵을 만들고, 어떤 빵집을 오픈하고, 제빵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빵 하나만을 기준으로 인생의 가이드라인을 설계한 남자. 그가 3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온 꿈의 파편들이 2곳의 콜마르 브레드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취재·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제빵사가 되기로 다짐한 11살 소년
이제 겨우 11살이 된 시골 소년에게 빵은 귀하디귀한 음식이었다. 서울에서 제빵사로 일하는 작은 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마 접하지 못했을 거였다. 때문에 달달한 팥앙금이 듬뿍 들어간 단팥빵, 시골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햄버거를 처음 맛보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소년은 그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꿈을 정했다. 나도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 이것이 바로 전라남도 해남에서 나고 자란 김민철 셰프가 제빵사를 꿈꾸게 된 짧은 스토리의 전말이다. 그는 그날의 일들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18살 무렵, 그는 본격적으로 제빵사가 될 준비를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변함없이 간직해온 꿈을 비로소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제빵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그는 당시 작은아버지가 노량진에서 운영하던 파밀리아 제과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제빵사란 직업이 빵만큼 달콤하지만은 않았단다. 제과제빵업계의 열악한 환경은 열정 많은 청년의 의지를 자꾸만 시험에 들게 했다. “그때만 해도 실외에 수도꼭지가 있었어요. 설거지를 하려면 물을 데워서 밖으로 가져와야 하는데 겨울에는 날이 추우니까 금방 식어버리잖아요. 하는 수 없이 찬물로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손이 다 트는 거예요. 슬슬 이게 진짜 내 길인가 싶더라고요” 오매불망 제빵사만 꿈꾸던 그에게도 저녁마다 한강에 가서 심각하게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방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빵집의 규모가 작아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오븐을 보고 반죽을 치는 등의 일들을 동시에 해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근무 기간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그에게 행운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부터는 기술 연마에 매진했다. 훌륭한 기술을 지닌 선배들을 보면 힘들다는 생각도 씻은 듯이 가셨다. 하루라도 빨리 기술을 쌓아 따라잡고 싶은 욕심뿐이었단다. 특히 셰프는 신당동 엠마에서 일할 당시 공장장으로 있던 정일균 셰프(현 씨엘 드 프랑스 오너셰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손재주가 정말 남다른 분이거든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멋들어진 빵이 뚝딱 나와요. 처음엔 저 사람은 대체 뭐지 싶었어요(웃음)” 큰 빵집을 거쳐 온 공장장들의 노련미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법. 그는 선배들을 보며 꿈을 현실로 바꾸고 미래를 그렸다.

알록달록한 빵이 있는 곳, 콜마르브레드
엠마에서 나온 셰프는 교대 프랑세즈, 구리 씨엘 드 프랑세즈 등 여러 빵집을 거치며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2001년에 우연한 기회로 대전 갈마동에 오픈하는 프랑세즈의 메뉴 개발자로 일하게 됐는데, 이는 그가 대전에 터를 잡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당시 대전은 지금처럼 번화한 동네가 아니었다. 크거나 높은 건물이 없고 주변이 다 논이라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고 한다. 그가 대전에 머문 기간은 단지 몇 개월에 불과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몇 개월이 운명을 바꾸었다. “대전 일을 마무리하고 서울에 다시 돌아갔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 길로 짐을 싸서 바로 대전으로 내려왔어요” 그가 대전 어은동에 콜마르브레드(COLMAR BREAD)를 연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3년의 일이다.
프랑스의 동화 마을로 불리는 콜마르에서 이름을 본 딴 매장은 아기자기하고 밝은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베리베리’, ‘카푸치노’, ‘먹물 치즈 바게트’, ‘녹차라테’ 등 매대에 놓인 형형색색 빵들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끌어당긴다. 동네빵집임에도 마치 디저트 숍처럼 화사한 색상의 제품들이 많아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그가 빵을 만들 때 유독 강조하는 것이 ‘빵의 색’이란다. “빵은 황금색이어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처음 제빵을 시작할 때부터 알록달록한 빵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재료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매장에 늘 빵 냄새가 풍기도록 빵은 하루 세 번 구워 판매해야 한다는 것, 빵을 만들 때는 반죽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도 그의 지론. 특히 그는 밀가루에 물이 충분히 흡수되도록 하는 마법의 시간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기본을 지켜서 빵을 만들면 빵이 정말 맛있어요. 반죽을 제대로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빵 맛은 차원이 달라지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반죽만큼은 정석을 반드시 지키는 편이에요”
현재 콜마르브레드는 일 매출 3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오전과 오후 세 번에 걸쳐 갓 구워져 나오는 따뜻한 빵, 시선을 확 사로잡는 색감, 간식, 디저트, 식사용으로 적재적소에 즐기기 좋은 맞춤 품목 등 콜마르브레드만의 차별화된 전략은 처음 오픈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출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1호점의 성황에 힘입어 김민철 셰프는 얼마 전 근처에 더 넓은 공간의 2호점을 오픈했다. 그는 요즘 2호점을 안정화시키느라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대회를 디디고 올라서다
김민철 셰프의 이력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 빵집에서 일한 이력보다 대회에서 수상한 이력이 더 많고 콜마르브레드에는 그의 수상 경력을 적은 표지판이 보란 듯이 걸려 있다.
처음 그를 자극한 건 크림치즈 경연대회였다. 별 생각 없이 출전한 크림치즈 경연대회에서 그는 참패를 겪었다. 앙트르메 위에 설탕 공예와 초콜릿 공예 장식물을 올린 화려한 작품들과 달리 밋밋한 자신의 작품을 보며,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날 이후 곧장 학원을 등록해 공예 기술을 배웠다. 7개월 동안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강행군이 펼쳐졌다. “한 달 학원비가 75만원이었어요. 당시 제 월급으론 어림도 없는 돈이었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기저귀 값도 제대로 주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하고 싶으면 해보라며 자신을 적극 밀어주던 아내에게 그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악착같이 매달린 결과였을까. 2007년에 열린 서울 국제 빵 · 과자 경연대회(SIBA)에서 첫 출전 만에 소형설탕공예 부문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년 후인 2008년, 그는 다시 크림치즈 경연대회에 출전해 빵 부문 동상을 수상하며 지난 패배의 설움을 씻어냈다. 셰프는 그때 비로소 빵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물론 항상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작년에 일본에서 열린 탑 오브 파티시에 인 아시아에 출전해선 실패의 쓴맛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올해는 프랑스 대회 출전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로 하여금 매년 대회에 참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빵을 하다보면 이루고자 하는 게 점점 늘어요. 후배들에게 자극을 받을 때도 많죠. 그런데 그 앞을 걸어가는 선배가 정체돼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이는 대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회는 전국의 셰프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가 한 뼘 성장하면 꼭 그보다 더 성장한 누군가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그는 갈증이 났다. 비록 종이 한 장의 차이일지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대회에 참가하도록 하는 이유로 충분했다. “전 국내 대회든 국제 대회든 대회에 출전할 때는 무조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대회가 끝나면 저도 모르게 다음 대회를 찾고 있더라고요. 돈도 많이 들고 고생길도 훤한데 참 이상하죠” 김민철 셰프는 매 대회마다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혹여 정말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연습량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습관처럼 다음 대회를 준비해왔다. 이쯤 되니 자신의 8할은 대회 경험으로 완성됐다는 그의 말을 부정할 길이 없다.
그런 그가 후배들과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하나다. 목표를 너무 크게 잡지 말라는 것. “이룰 수 있는 만큼만 목표를 정하는 거예요. 그걸 이룬 다음 또 다른 목표를 정해가며 꿈에 한 걸음 가까이 가면 되요. 제가 가장 첫 번째로 잡은 목표는 알록달록한 빵이 가득한 제 가게를 오픈하는 거였어요. 그 후에는 기능장 취득을 목표로 잡았고 지금은 3개의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달리고 있어요” 특히 3호점만큼은 실제 콜마르에 있는 근사한 집을 재현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목표를 다 이룬 후에는 기회를 얻지 못한 후배들에게 빵집을 물려주고 싶다고 한다.
한 빵집의 오너인 지금은 현장에 있는 시간이 전보다 많이 짧아졌지만, 김민철 셰프는 빵을 만들 때만큼은 항상 ‘내가 최고’라는 주문을 외운다고 했다. 내가 만든 빵은 그 누구의 것보다 맛있다는 생각으로 빵을 만들어왔다고. 하다못해 과일 하나를 장식할 때도, 반죽을 오븐에 넣을 때조차도 그의 표정은 진중했다. 이것이 그가 빵 한 덩이를 대하는 자세이며 제빵사 인생에서 결코 굽힌 적 없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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