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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팡 강경원 오너셰프
   비앤씨월드 2018.06.28 Am11:22, 조회 :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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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Kyung Won

오팡 강경원 오너셰프
도전하는 자는 아름답다
자신의 일을 삶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것은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만족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이다. 강경원 셰프는 단 하루도 빵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지치지만 그에게 제빵은 어떤 것보다 즐거운 일이며, 제빵사는 무엇보다 자부심 넘치는 직업이다
취재 • 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평범한 직장인에서 기술자로
오팡은 경기도 분당에서 건강빵을 선보이는 빵집으로 유명하다. 현재 수내동에 1호점, 서현동에 2호점을 운영 중이다. 동경제과학교 졸업을 증명하는 푯말이 입구에 정갈하게 걸린 2호점 매장에서, 해맑은 웃음이 매력적인 강경원 셰프를 만났다.
오팡을 오픈하기까지 그는 다양한 경력을 거쳤다. 스물 넷, 그 시대 제빵사들에 비해 조금 늦은 나이에 제과제빵을 시작했지만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지금껏 누구 못지않게 크다. 그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기술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때는 1997년, IMF 시기였다. 당시 부산 삼성자동차 연수생이었던 그는 IMF로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구조 조정이 감행되자 위태로운 회사원 대신 기술직으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무직이 된 그가 우연하게 발을 들인 곳이 바로 빵집이었다. 친구가 근무하는 ‘창원코아’에서 놀면서 조금씩 잡무를 돕던 일이 그대로 그의 꿈이 된 것이다. “잘 할 줄도 모르는데 일이 너무 즐거운 거예요. 작은 빵집에 직원이 3명이라 2~3시면 일이 끝났어요. 그 외 시간은 오로지 제 시간이라 근무를 마치고 나면 친구가 데이트하러 갈 때 혼자 작업장에 남아 아이싱 연습을 하곤 했죠” 그가 다른 직원들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런데 ‘혼자’ 하는 게 문제였다. 창원코아를 그만두고 부산 빵집 ‘황태자’에 가서 보니 그의 아이싱 실력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황태자에서 3년간 일을 익힌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부산을 떠나 상경했다. “그때는 서울 빵집의 기술자들이 부산에 내려와서 세미나를 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서울의 기술이 높게 느껴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에서 기술을 배우고 싶어졌어요”
지방 기술자에게 서울은 동경의 도시. 실제로 한 발 앞서갔던 서울의 제과점 사정은 부산과 달랐다. 그는 서울 잠실에 위치한 ‘하이제’에 입사했다. 주방 직원만 10~12명에 달하는 하이제는 제법 크고 유명한 빵집이었다. 당시 하이제의 책임자로 근무했던 사람이 안종섭 셰프(현 성심당 생산이사)다. 일본에서 공부한 안종섭 셰프는 당시 업계의 ‘스타 셰프’. 강경원 셰프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긴 시점이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6년간의 일본 생활이 그에게 가져다준 것
강경원 셰프는 2002년, 일본 유학행을 택했다. “그때는 일본 출신의 셰프들이 한창 활약하던 시기였어요. 일본 기술을 배워야 우리나라에 바로 접목시킬 수 있다는 인식도 강하게 잡혀 있었고요”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제과제빵 교육 기관인 동경제과학교에서 빵과 1년, 양과자본과 2년 과정을 졸업했다. 우리나라에 천연효모종 빵이 유행하기 전 동경제과학교 빵과에서 난생 처음 배운 천연효모종을, 그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토탈 베이커리 형태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빵집 혹은 과자점이 확실히 구분돼 있다. 2가지 형태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일본의 경우 한 품목에 집중하는 만큼 뛰어난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훌륭한 맛과 아기자기한 비주얼, 모든 제품을 당일 생산 • 판매하는 시스템, 직업 자체에 대한 열정 등은 그의 제과제빵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꿨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일본에서 6년간 생활하고 몇몇 파티스리에서 일하면서 눈으로 보고 들은 것들이 제게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것 같아요”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타지에서 생활하던 그에게 힘이 돼준 사람이 있다. 당시 리갈 호텔에서 책임자로 일하던 정홍연 셰프다. 그는 정홍연 셰프와 10년 넘게 선후배로 지내고 있다. 정홍연 셰프에게 그는 ‘귀염둥이 막내 동생’으로 통한단다.
2007년 8월, 35세의 나이에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몸이 편찮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번다는 이유로 6년간 부모를 자주 찾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스러웠다고 했다. 귀국 3개월 후인 그해 11월,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이유는 비단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6년이 지난 후의 한국 시장이 궁금하기도 했고, 가게 오픈을 위한 자본도 모아야 했어요. 일본에서 배운 천연효모종 빵집을 그때 바로 오픈했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네요(웃음)” 그는 서강헌 셰프가 운영하는 본누벨에서 1년간 일하면서 한국 제과제빵 시장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두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빵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그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제과제빵 R&D 파트. 베즐리, 홈플러스, AK백화점 라롬드뺑 등을 거쳤는데, 그중에서도 라롬드뺑에서 얻은 것이 많다. R&D는 시즌 때마다 신제품을 내야 한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어버이날 등 이벤트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원가 계산, 재고 확인, 레시피 정리, 품목 제조 보고서 작성 등 개인 빵집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는 매장 운영과 제조를 모두 도맡아야 하는 오너셰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인데 실제로 라롬드뺑에서 배운 것들은 그에게 좋은 밑거름이 됐다.
올해 오픈한 지 3년째에 접어든 오팡은 사실 그가 라롬드뺑에서 일하는 도중 우연히 지인에게서 인수한 빵집이다. 처음 한 달간은 직장생활과 매장 운영을 병행했는데, 이게 끝내 화근이 됐다. “욕심을 부려서 무리를 했죠. 제가 매장을 잘 챙기지 못하니 직원들이 속속 그만뒀어요. 결국 라롬드뺑을 그만두고 오팡만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가라앉은 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새벽 5시에 매장에 출근했다가 다음날 1시에 퇴근해 찜질방에서 선잠이 드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놓쳐 버린 한 달을 메우기 위해 그는 딱 한 달간의 시간을 버려야 했다. 그런데 그 덕분에 오팡이 점점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니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손님들이 오팡에 오면 셰프가 매장에서 하루 종일 빵을 만드는 모습이 항상 보이니까 좋게 보는 거예요. 손님들이랑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고 맛있는 빵이 나오면 추천도 하고 그러다 보니 단골손님이 점점 늘었어요” 판매 공간과 작업실이 한 곳에 자리한 12평짜리 작은 빵집은 까다로운 엄마들이 많기로 유명한 경기도의 부촌, 수내동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그는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종종 매장에 놀러온 아들딸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반죽을 조몰락거리면서 “아빠가 만든 빵이 최고”라고 말할 때, 그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자부심이 든다. 그는 ‘천연효모종과 좋은 재료를 써서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빵을 만들자’는 초기 모토를 지켜나가려고 한다. 이는 그가 오팡 인수를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현재 오팡의 모든 빵에는 사워종이 들어가며 그 외 여러 가지 천연효모종을 사용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
강경원 셰프는 대회에 유독 관심이 많다. 지난 4월 20일 그는 아시안 젤라토 대회에 출전했다.이 대회에서 3위 안에 들면 이탈리아 쿠프 뒤 몽드의 출전 자격을 얻게 된다. 아쉽게도 순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베스트 플레이트 디저트상을 수상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단다. 그런가 하면 앞서 2009년에는 쿠프 뒤 몽드 드 라 불랑주리 한국 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으며 대한제과협회가 주최하는 베이커리 페어 초콜릿 • 설탕 공예 부문에 경기 지회 대표로 출전한 적도 있다.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미련이 많이 남아요. 그런데 준비 과정이 스릴 있고 재밌어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자꾸 대회에 나가고 싶어지네요. 대회를 준비하고 치르면서 얻는 모든 것이 오로지 제 것이 되니까 한 뼘 더 성장할 기회도 되고요. 제가 대회를 좀 좋아해요(웃음)” 그는 현재 제과기능장협회 및 대한제과협회에서 기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이유 역시 단순하게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본지 ‘우리시대기술인’ 코너의 제품 소개 페이지에 사정상 원하는 제품을 소개하지 못하게 됐을 때도 그는 몹시 아쉬워했다. 조만간 부산지회에서 전립분 세미나를 앞두고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섰던 이십대 중반, 전망 좋은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만약’이라는 가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랬다면 지금쯤 정리 해고되지 않았을까요?”라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그는 제빵사에 대해 ‘평생직장’이라고 했다. 앞으로 적어도 일흔까지는 밀가루 범벅인 흰 작업복을 벗지 않을 생각이다. 제빵사로 일한 것에 대해 지금껏 단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기에 누구보다 자신 있게 후배들에게 말할 수 있다. “제빵사라는 한 길만 보고 우직하게 빵에 전념하라”고.

오팡
주소 1호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돌마로 364(수내동), 2호점 경기도 성남시 중앙공원로40번길 42(서현동)
문의 1호점 031-718-9555, 2호점 031-708-9555

약력
1997년 창원코아 근무
1998년 황태자 근무
2000년 하이제 근무
2003년 동경제과학교 빵과 졸업
2005년 동경제과학교 양과자본과 졸업
2007년 엘리제 근무
2008년 본누벨 근무
2009년 베즐리 R&D 파트 근무
2011년 홈플러스 근무
2012년 AK 플라자 라롬드뺑 총괄 실장
2015년~現 오팡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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