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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리쉬블랑제리 한상환 셰프
   비앤씨월드 2015.10.07 Am09:15, 조회 : 7,448  
풀리쉬블랑제리 한상환 셰프
제빵이라는 인생의 나침반  

풀리쉬블랑제리 한상환 셰프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기술’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썼다. 기술이라는 말에 내재된 묵직하고 성실한 기운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헛돌던 그의 삶은 제과제빵을 배운 뒤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인천시 동춘동에 자리한 풀리쉬블랑제리에서 한상환 셰프를 만났다.    

취재‧글 구명주 사진 이재희

내성적인 청년, 제과제빵을 만나다
“빵을 배우기 전에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슈퍼마켓, 공사장, 음식점, 술집 등 여기저기를 떠돌며 일했죠” 풀리쉬블랑제리 한상환 셰프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경북 영천 출신인 그는 경남 창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대 청년이 마음 붙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만 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니 타지에서 적응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일부러 술집 웨이터로 일하며 억지로 낯선 사람들과 부딪치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이 못마땅하고 답답했다. 그런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기술을 하나 배워서 훗날 나만의 가게를 열리라.
그가 처음 배운 기술은 제과제빵이 아니었다. 누나가 살고 있던 울산에서 인테리어 관련 기술을 배웠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회의감만 커졌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때 뇌리에 스친 건 옛날에 목격한 어느 제과점의 풍경이었다. “친한 형이 창원에서 제빵사로 일을 했었거든요. 형이 일하던 제과점에 놀러갔다가 빵의 매력에 반했죠. 밀가루가 부풀어 빵이 되고, 기름을 만난 반죽이 도넛으로 변하는 일련의 과정이 재밌게 다가왔죠. 무엇보다 빵 냄새가 어찌나 좋던지. 그때만 해도 제가 제빵사가 될지 상상도 못 했어요”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셰프는 밤마다 제과제빵학원에서 빵과 과자를 구웠다. 낮에는 일, 밤에는 빵을 배우는 이중생활이 반복됐다.  
학원을 수료한 뒤, 그는 울산의 프로방스 제과점에 취업했다. 셰프는 출근 첫날, 제과점 주방에서 느꼈던 오묘한 감정을 십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주방에 들어갔는데, 다들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제게는 일감을 주지 않더라고요. 그저 쭈뼛쭈뼛 거리며 사람들 주위를 맴돌기만 했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면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하하호호 웃으며 선배들에게 다가갔으련만, 그는 적응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일을 관둘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제과점을 나오기는커녕 그의 손에는 반죽이 쥐어져 있었다.

서울에서 시작하는 제 2의 인생
하는 일마다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관두기 일쑤였건만, 제과점에 취업한 뒤로는 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방황했던 자신에게 드디어 면죄부를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묵묵히 수년간 울산에서 빵을 만들던 어느 날, 셰프는 울산이라는 좁은 우물을 뛰어넘기로 한다. 울산에서 함께 일하던 최정욱 셰프가 그의 마음을 알아보곤, 서울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하나 알아봐 주었다. 소개받은 곳은 빠나미 제과점이었다. 당시 빠나미 제과점의 부장이었던 송영광 명장에게 한 셰프는 “경력자가 아니라 신입직원이라 생각해주십시오”라며 자신을 낮췄다. 어설픈 밑그림이 그려진 종이보다 깨끗한 도화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지방에서 근무하면서 보지 못했던 무스케이크, 초콜릿, 화과자 등이 서울의 제과점엔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천연 발효종을 배양해 빵을 만드는 기법에도 비로소 눈을 떴다.
조금 더 일찍 제과업에 발을 들였다면 좋았으련만. 20대 후반에 제과제빵을 시작했기에, 또래와 비교하면 그는 한참이나 뒤쳐진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조바심이 났다. 열등감은 셰프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다. “하나라도 더 많이 배우려고 애썼어요. 쉬는 날이면 나폴레옹 제과점, 김영모 제과점 등 서울에서 유명한 빵집을 찾아다니며 제품을 구경하곤 했죠. 일이 끝난 뒤에도 업장에 남아 연습을 했고요” 혼자 고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셰프는 리치몬드제과학원의 기술자반에 등록하기까지 했다. 사실 상경할 때만 해도 그는 ‘1~2년 정도 일한 뒤 지방에서 장사를 해야지’하고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빵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빵은 더 멀리 달아나 있었다. “기술이란 게 참 묘해요. 배우고 또 배워도 끝이 없더라고요”
빠나미 제과점에 이어 취직한 곳은 안스베이커리 광명점이다. 하지만 그 무렵 셰프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믿을 수 없는 누나의 전화 한 통. “아버지가 간암 말기래” 자식 도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6개월뿐이라 했다. 셰프는 일을 관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간호하기로 한다. 안스베이커리 안창현 명장은 자리를 비워둘 테니 다시 돌아오라 배려했지만, 셰프는 퇴직을 결정했다. 아버지는 병원이 진단했던 6개월을 넘기지 못하셨다.

안스베이커리에서 꽃 피운 전성기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낸 뒤 그는 경기도로 돌아온다. 때마침 안스베이커리는 만수점에서 일할 부장을 구하고 있었고, 셰프에게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 셰프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안스베이커리에 다시 입사한 셰프는 새벽 3시 반이면 가게 문을 열었다. 셰프들과 손발을 맞춰나가긴 위해선 직책이 높은 자신이 솔선수범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명절에도 그는 매장을 지키며 빵을 만들었다. 매출이 오를수록 셰프는 가슴팍에 훈장을 하나씩 더 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상환 셰프는 안스베이커리에 일했던 그때를 자신의 전성기라 말한다.    
특히 2010년은 그에게 잊지 못할 해다. 캘리포니아 호두 대회, 캘리포니아 레이즌 대회, 유제품 경연대회 등 여러 대회에 출전하며 대회가 주는 짜릿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어떻게 맛을 낼까’ 등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셰프의 머릿속에는 온통 제품 생각뿐이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 레이즌 대회를 준비하면서는 건포도종이 잘 배양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재료를 찾고자 고민했다. 그때 떠오른 재료는 향긋한 ‘천혜향’이었다. 천혜향과 건포도로 종을 만든 셰프는 캘리포니아 레이즌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큰상을 받은 그 다음해, 유제품 경연대회 빵 부문에서도 최우수상을 탔다. “크림치즈를 이용한 제품에는 레몬을 많이 쓰잖아요. 저는 대신 파인애플을 이용한 크림치즈 빵을 개발했어요. 파인애플은 레몬처럼 새콤하면서 식감도 좋으니까요”
기술을 연마하며 10년간 안스베이커리 만수점을 이끌었던 셰프. 마치 내 가게라도 되는 것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안스베이커리를 떠날 시기가 찾아온다. 이별의 징조는 몸과 마음에서 나타났다. 방전되기 전의 전구가 깜빡깜빡 거리는 것처럼 셰프도 빛을 잃어갔다. ‘내 가게’를 열고 싶다는 꿈 또한 저 멀리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셰프는 젊은 날을 까맣게 태운 안스베이커리를 관둔다.

사업가가 아닌 그냥 ‘빵쟁이’  
하지만 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12년 6월에 일을 관둔 그는 7월부터 바로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지친 나머지 내 가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도 접었죠. 그런데 친누나가 저를 말렸어요. 하던 일을 멈추지 말라고” 창업 자금을 보태주면서까지 그를 지지해주는 누나 덕분에 셰프는 인천 동춘동에 오랫동안 꿈꿔온 자신의 가게를 열기에 이른다. 가게 이름을 정한 사연은 상당히 극적이었다. 오픈 일을 앞두고도 가게 이름을 정하지 못하던 그에게 안스베이커리 안창현 명장이 “풀리쉬블랑제리는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제빵법의 기본 중의 기본인 풀리쉬(poolish). 이름을 듣자마자 셰프는 무릎을 쳤다.
내 가게를 가졌지만 그만큼 걱정은 배가 됐다. 풀리쉬 블랑제리가 문을 연 자그마한 동네에는 빵집이 유독 많았다. 동네 입구에는 마트 빵집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파리바게뜨가, 또 그 옆에는 소위 ‘천 원짜리 빵’을 파는 저가 프랜차이즈 빵집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풀리쉬 블랑제리 인근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하나 더 문을 열었다.
풀리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제품의 질로 차별화를 두는 것뿐이다. 그래서 셰프는 깐깐한 철칙을 세우고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킨다. 유기농 밀가루, 무항생제 달걀 등으로 빵을 만들며 하루가 지난 빵은 팔지 않는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는 주민들도 있지만, 셰프는 그때마다 말한다. “그만큼 좋은 재료로 제대로 만듭니다” 고아원, 복지원 등 동네 기관에 빵을 꾸준히 기부하는 마음 씀씀이 또한 남다르다. 오너셰프가 된 뒤에도 셰프는 여전히 직원들과 주방에서 반죽과 씨름하며 살고 있다. 발효종을 연구하는 게 좋아, 나중에는 발효종으로 만든 빵만 파는 전문점도 내고 싶단다.
빵 밖에 모르는 그는 2014년 우수숙련기술자에 선정되며 기술자 인생에 획을 하나 더 그었다. 셰프는 가끔 직접 장작으로 불을 피운 화덕에서 빵을 굽는 백발의 노인을 상상한다. 그 모습은 바로 미래의 셰프 자신이다. “저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에요. 가게를 운영해보니 더더욱 알겠더라고요. 그냥 빵쟁이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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